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안(子安). 아버지는 좌참찬 이홍연(李弘淵)이며, 어머니는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52년에 그가 태학의 재임(齋任)으로 있을 때 새로이 급제한 자들이 성묘(聖廟)를 배알하려 하자 이들 가운데 선현(先賢)을 모독한 자가 있다 하여 적극, 반대하다가 정거(停擧: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일시 빼앗음)되었다.
그 뒤 두문불출, 낭천(狼川)에 은둔하던 중 벼슬길에 오르는 기회를 얻어 후릉참봉(厚陵參奉)·의금부도사·종부시직장을 거쳐, 사옹원주부가 되었다. 그 뒤 은진현감·사복시주부, 공조·이조의 좌랑을 지냈다.
1668년(현종 9) 금성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반숙마 한 필이 하사되었다. 얼마 뒤 호조정랑이 되고, 양천군수로 다시 외직 생활을 하였다. 이어 한성부의 윤·서윤을 지낸 뒤 면천군수를 거쳐, 남양부사를 끝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그는 성품이 중후 순실하여 자기자신을 감추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의 경지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으나, 다만 송시열은 그의 사람됨을 알고 도(道)에 들어갈 만한 인물로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