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순(仲順). 이상좌(李上佐)의 아들이다. 화원이었으며 수문장을 지냈다. 허균(許筠)이 찬한 「이정애사(李楨哀辭)」에 의하면, 형 이숭효(李崇孝)가 일찍 죽자 조카인 이정(李楨)을 맡아 양육하며 화가로 대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림을 잘 그려 명종의 어용(御容)까지 그리고 군직(軍職)을 제수받았으며, 김시(金禔)의 필법을 좋아하였다고 전한다.
유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팔경도(八景圖)」와 그가 죽던 해인 1593년 임진왜란을 피하여 홍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에서 그린 「산수도」(개인 소장) 한 폭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팔경도」에서는 단선점준(短線點皴)이 구사되어 있는 등 조선 초기 안견파 화풍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산수도」에는 주봉(主峰)의 음영이라든가 토파(土坡)의 처리 및 바위의 준법(皴法) 등에 절파풍의 영향이, 그리고 근경의 수법(樹法)에서 조선 초기의 전통성이 간취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절충적 경향은 조카인 이정에게 계승되어 17세기 화단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