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겸수(謙叟). 이근영(李根榮)의 아들이다.
1850년(철종 1)에 철종의 즉위를 경축하는 경과증광별시문과에 심순택(沈舜澤)·김병국(金炳國) 등과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고종 3) 이조참의, 1874년 예방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2월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7년 이조참판, 1880년 대거승지(對擧承旨)가 되었다.
1881년 7월에는 참판 재직 때의 잘못으로 인하여 숙천부에 정배되는 형을 받았으나, 그해 12월에 방면되었다. 1889년 7월 동지정사 이돈하(李敦夏)의 부사가 되어 서장관 윤시영(尹始榮)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91년 한성부판윤, 다음 해 예조판서에 올랐다.
1892년 종묘 별대제(別大祭)의 도제조가 되어 품계가 상승되기도 하였다. 1893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1896년에는 정2품의 품계로 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의 일을 맡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장례원경(掌禮院卿)에 임명됨과 함께 칙임관3등에 올랐다.
1897년 11월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됨과 동시에 칙임관2등에 올랐다. 1899년 왕에게 올린 상소가 문제되어 철도(鐵島)로 7년간의 유배에 처해졌으나, 이듬해 4월에 특별히 방송(放送)되고 12월에 징계가 풀렸다. 고종 당시 외교와 의전을 주관하는 일에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