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63년, 즉 개로왕 9년(일본의 雄略王 7)에 일본에 건너가 활약하였다. 당시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건너간 도공(陶工)·화공·가죽제품공 등 기술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은 ‘베(部)’라는 무리에 속하여 있었다.
인사라아도 이와같이 ‘가베(畫部)’에 속하였으며, 유랴쿠왕(雄略王)은 이들 도일 기술공들을 가미쓰모모하라(上桃原), 시모쓰모모하라(下桃原) 그리고 마가미노하라(眞神原)라는 세 곳에 살게 하였다.
인사라아의 자손들은 604년(推古王 12) 가와치화사(河內畫師)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장소에 살면서 면세를 받는 등 국가적 보호를 받으며 세습화공(世襲畫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