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린 ()

목차
관련 정보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중 해동명적 - 신덕린 필적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중 해동명적 - 신덕린 필적
회화
인물
조선전기 예의판서, 보문각제학 등을 역임한 서화가.
이칭
불고(不孤)
순은(醇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예의판서|보문각제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전기 예의판서, 보문각제학 등을 역임한 서화가.
내용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불고(不孤), 호는 순은(醇隱).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성용(成用)의 4대손으로 벼슬은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등과 친교가 있었고 고려가 망한 뒤에는 광주(光州)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해서·초서·예서에 모두 능하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특히 예서의 한 종류인 팔분체(八分體)로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필체는 독특하여 당시 사람들이 덕린체(德隣體)라고 불렀다. 그의 그림으로는 구덕수궁미술관 소장인 「산수도(山水圖)」가 있으나 양식면으로 볼 때 조선 후기의 남종화(南宗畫)와 유사점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므로 그 진위여부를 알기 힘들다.

그의 서체의 모간(模刊)은 『고금법첩(古今法帖)』에 전한다.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으로 고령의 영연서원(靈淵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대동기문(大東奇聞)』
『한국서예사(韓國書藝史)』(김기승, 박영사, 1974)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한국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