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 8책. 목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하지는 않으나 1900년에 간행된 듯하다.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42수, 권2∼12에 서(書) 226편, 권13에 잡저 12편, 권14에 서(序) 20편, 기(記) 1편, 제(題) 2편, 설(說) 3편, 명(銘) 1편, 혼서 2편, 고축문 3편, 권15에 제문 15편, 비문 2편, 묘갈명 2편, 묘표 1편, 행장 3편, 행록 1편, 전(傳) 2편, 권16·17에 부록으로 어록·가장·묘표·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이 문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홍직필(洪直弼)·송내희(宋來熙)·조병덕(趙秉悳)·전우(田愚) 등 당시 이름난 학자 및 제현들과 주고받은 것이다. 대부분 경전의 내용이나 성인들의 행동에 대한 의문점, 도학의 원리에 대한 의논과 후학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들이다.
특히, 조병덕·구인조(具寅祖)·조장하(趙章夏)·이선식(李善植)·권성문(權聖文) 등 기호학파 학자들과는 많은 양의 편지를 통해 학문적으로 상당히 깊이 있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다. 이 중 「상숙재조장(上肅齋趙丈)」은 조병덕에게 학문을 하면서 평소 품고 있던 여러 가지 의문점을 묻고 있다. 주로 『중용』의 성(性)·도(道)·교(敎)에 대해 다루었다. 미발설(未發說)에 대해 주희(朱熹)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한 점이 주목된다.
잡저 중 「용현론(用賢論)」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현인을 등용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주장한 것이다. 「혹인문답(或人問答)」은 어떤 사람이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중 의심스러운 곳을 질문한 것에 답한 글로 율곡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간서차록(看書箚錄)」은 수필 형식의 짤막한 독후감으로, 수록된 내용이 다양한데,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 선유들의 말이나 왕복 서간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주석을 달거나 시사와 관련시켜 풀이한 글이다.
「현강기문(玄江記聞)」 역시 「간서차록」과 마찬가지로 수필 형식의 글이다. 자신의 의견을 시사와 관련하여 논한 것이다. 저자의 깊고 해박한 지식과, 당시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혼례동뢰설위도(婚禮同牢設位圖)」는 기호지방 사대부가의 혼례 상차림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