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는 551년(진흥왕 12) 고구려승 혜량(惠亮)이 귀화한 뒤 황룡사에서 처음 개최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현종 때의 4회 개최를 비롯, 공민왕 때의 9회까지 모두 107회의 왕실이 중심이 된 인왕도량을 열었다.
이 법회는 『인왕경(仁王經)』의 내용에 의거하여 개최된다. 『인왕경』은 인왕(仁王)이 16대국의 국왕에게 교시한 바와 같이, 부처님이 제왕들을 대상으로 국토의 안일을 위하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심법(深法)을 설한 경전이다. 인왕도량은 『인왕경』의 호국품(護國品)에 의거하여 설하여진다.
호국품은 여래가 국왕을 향하여 국토를 보호하는 방법으로서 백불상(百佛像)·백보살상(百菩薩像)·백나한상(百羅漢像)을 모시고 100명의 법사를 청하여 백등(百燈)을 켜고 백향(百香)을 사르고 100가지의 꽃을 공양하며, 하루에 두번 『인왕경』을 강독하고 그에 대한 공덕을 설하도록 되어 있다.
인왕도량은 이와 같은 『인왕경』 호국품의 내용에 따라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고 100명의 법사를 초청하여 법회를 여는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황룡사에서 이 도량을 열었으나 고려시대에는 내전(內殿)·회경전(會經殿)·문덕전(文德殿)·선경전(宣經殿) 등의 왕궁에서 열렸다.
그 이유는 『인왕경』을 설하는 이가 국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궁이 아닌 사찰에서 행할 경우에는 국왕이 반드시 행차하여 설하였다. 고려시대의 인왕도량은 3년마다 설하는 정기인왕도량과 변재가 있을 때 수시로 여는 도량이 있었다. 가장 많이 열린 때는 전란이 있었던 현종 때와 고종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