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풍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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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적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조선시대 관서팔경의 하나인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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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조선시대 관서팔경의 하나인 누정.
내용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익공 겹처마 팔작집.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일컬어져 왔다.

강계 남산의 남쪽 자락이 독로강(禿魯江)과 북천강의 합류 지점에서 이루어 낸 높은 벼랑 위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다. 정면인 동쪽에서 보면 1층이지만 서쪽은 독로강을 향하여 기울어진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살려 2층으로 꾸몄다.

정면 오른쪽에서 3번째 기둥을 생략하여 안에서 바라볼 때 정면의 시야를 트이게 한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인풍루가 강계읍성(江界邑城)의 서북쪽에 세워진 장대(將臺), 즉 군사지휘소였으므로 앞마당을 잘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건물 내부에 전혀 기둥을 세우지 않고 통간으로 처리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마루 밑에는 24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장귀틀과 동귀틀을 가지런히 짜맞춘 널마루를 깔았으며, 마루 가장자리에는 키가 낮은 계자각(鷄子脚)난간을 둘렀다.

밖두리기둥(2.7m)은 모두 중앙부를 배부르게 다듬었으며, 네 모서리기둥[隅柱]은 다른 기둥보다 굵고 높이도 7㎝ 가량 높아서 귀솟음 수법에 의한 구조적·시각적 균형을 얻으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둥 머리의 2익공과 창방 위의 화반(花盤)은 조선 후기의 작풍을 보이는데 익공의 길이가 특히 긴 점이 주목된다.

길이가 9m인 대들보는 굵은 부재(部材)를 사용하여 중간에 받침기둥도 세우지 않았으며, 종단면은 원형에 가까운 모죽임 사각형으로 가로 62㎝, 세로 72㎝에 이른다. 또 기둥머리 위에 직접 대들보를 올려놓고 보아지로 보강하여 구조적 안정을 꾀하였다.

지붕은 내부 고주(高柱) 없이 천장가구로만 받치도록 되어 있어서 대들보·중보·종보 등의 3중보와 도리 7개를 사용한 7량가로 만들어져 있는데 모두 노출되어 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1472년(성종 3)에 쌓은 강계읍성은 북쪽 국경의 요충이어서 인풍루 이외에도 장대 건물이 여러 곳에 있었다. 인풍루는 1680년(숙종 6)에 불탄 뒤 그 해에 다시 세워졌으며, 1950년대 초 전란으로 크게 손상을 입은 것을 수리해 놓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우리나라 역사유적』(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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