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神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온갖 일에 정통하였으며, 어질고 용맹하였다. 일본에까지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일본 비다쓰왕(敏達王)이 그를 초청하였으나, 위덕왕이 그의 재주를 사랑하여 보내지 않았다.
일본왕이 다시 길비우도(吉備羽島)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간곡히 보내줄 것을 청하자, 위덕왕은 583년(위덕왕 30)에 은솔(恩率) 덕이(德爾)·여노(餘怒)·가노지(歌奴知) 등과 함께 일본으로 파견하였다. 일본왕은 집을 주고 융숭히 대접하였다. 어느 날 일본왕과 문답하는데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찾아왔다.
둘은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밤이 새도록 환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있을 때 백제에 불리한 발언을 하였고, 임나(任那) 땅을 침략할 것을 모의하였기 때문에 함께 동행한 덕이 등에게 피살되었으며, 뒤에 덕이 등은 일본에서 잡혀 일라의 가족들에게 피살당하였다고 한다. 그는 셋쓰(攝津)의 겐미산(劍尾山)에서 살았으며, 일본인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