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안(定安). 뒤에 임규(任洼, 또는 任奎)로 개명하였다. 수상을 지낸 임원후(任元厚)의 맏아들로,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恭睿太后)와 남매간이다.
외척 재상가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1148년(의종 2)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1151년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쳐 이듬해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하였다.
무신란 직후인 1170년(명종 즉위년) 9월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다. 인물됨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장흥 인물조에 “외척의 어진 이로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었다.”라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