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성일(聖日)·사경(士徑), 호는 삼호(三好). 임석주(林錫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봉휘(林鳳輝)이고, 아버지는 승지 임광필(林光弼)이며, 어머니는 이수헌(李秀憲)의 딸이다.
1761년(영조 37) 통덕(通德)으로 있으면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림(翰林: 예문관 검열)에 보직되어 창덕궁에 있었다. 당시 영조가 세자의 비행에 격노하여 창덕궁에 나와 세자를 죽이려고 하자 그 불가함을 역설하고, 내전에 들어가 11세 된 정조(正祖)를 업고 나와 영조에게 부친의 잘못을 빌게 하였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이후 영조는 세자시강원의 시신(侍臣)들을 모두 몰아내었으나 그가 혼자 동궁 뒤에 엎드려 모시다가, 마침내 별군직(別軍職)으로 몰려나왔는데, 윤숙(尹塾)과 함께 여러 대신들을 향하여 세자를 구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였다.
이튿날 당시 영의정 신만(申晩)과 좌의정 홍봉한(洪鳳漢)이 사실을 영조에게 고자질하였으므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석방되어 함평현감으로 재직중 죽었다.
천성이 정직하고 굳세기로도 유명하였다. 1774년 좌승지에, 1777년(정조 1) 대사헌으로, 1783년 다시 예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