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안(定安). 시중을 지낸 임원후(任元厚)의 셋째아들로 공예태후(恭睿太后)와는 남매간이다.
외척 재상가의 자손으로 가문의 후광이 컸으나 아버지가 죽은 뒤 의종의 외척세력 억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무신란 후 명종이 즉위하자 비로소 예빈주부(禮賓注簿)를 거쳐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올랐으나, 이를 거부하고 그 뒤 과거에 급제하여 이부시랑에 이르렀다.
세인들이 임보가 산수에 자적(自適)함을 즐겨하는 것을 가리켜 신선 중의 사람이라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권력에는 초연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한편, 딸이 최충헌(崔忠獻)의 재취가 된 것으로 보아 전통 있는 귀족가문과 무인정권이 혼인을 통해 결합되는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