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필중(弼仲), 호는 포초(圃樵). 증 이조판서 임한(任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유겸(任由謙)이고, 아버지는 임추(樞)이며, 어머니는 남효온(南孝溫)의 딸이다. 익양군 회(益陽君 懷)의 사위이다.
1544년(중종 39) 별시 문과에 급제, 전경(典經)·저작·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거쳐, 1551년(명종 6) 교리를 지냈다.
1547년부터 3년 동안 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1551년 수안군수를 거쳐, 강원도·전라도의 암행어사로 나갔다. 1554년 장악원정·승문원판교 등을 거쳐, 1557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비변사관리로 등용하려 하자 익양군의 사위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고, 경연석상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소학』의 보급 및 실천을 주장하였다.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종실에 불교진흥정책을 지원하도록 명하였을 때 이에 반대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저서로는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