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이칭
시호
문충(文忠)
이칭
임원애(任元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89년(선종 6)
사망 연도
1156년(의종 10)
본관
정안(定安)
관련 사건
묘청의 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정안(定安). 초명은 임원애(任元敳). 예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임의(任懿)의 둘째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명문출신으로 당대의 문벌귀족가인 윤관(尹瓘)·이식(李軾)·이위(李瑋)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고, 자기의 딸은 인종에게 납비하여 외척이 됨으로써 빠른 출세를 하였다.

1142년(인종 20) 문하시랑평장사로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하여 총재(冢宰)의 자리에 오르고, 이어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다시 선충안사좌리동덕공신(宣忠安社佐理同德功臣)에 수태위(守太尉)·정안공(定安公)의 작호까지 겸대하여 왕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또한, 개경을 근거로 하는 귀족세력으로 묘청(妙淸)·정지상(鄭知常) 등 서경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수상에 재임하는 동안 인사행정이 공평했다는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
「고려시대의 정안임씨·철원최씨·공암허씨가문분석」(박용운, 『한국사논총』3, 197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