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안(定安). 초명은 임원애(任元敳). 예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임의(任懿)의 둘째아들이다.
명문출신으로 당대의 문벌귀족가인 윤관(尹瓘)·이식(李軾)·이위(李瑋)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고, 자기의 딸은 인종에게 납비하여 외척이 됨으로써 빠른 출세를 하였다.
1142년(인종 20) 문하시랑평장사로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하여 총재(冢宰)의 자리에 오르고, 이어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다시 선충안사좌리동덕공신(宣忠安社佐理同德功臣)에 수태위(守太尉)·정안공(定安公)의 작호까지 겸대하여 왕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또한, 개경을 근거로 하는 귀족세력으로 묘청(妙淸)·정지상(鄭知常) 등 서경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수상에 재임하는 동안 인사행정이 공평했다는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