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아버지는 임태순(林台順)이다.
향리 출신으로 녹사·도염서영(都染署令)·낭장·도관좌랑(都官佐郎)을 거쳐 1385년(우왕 11)에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그 뒤 판도정랑·이조정랑·의주목사를 거쳐 1393년(태조 2)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경상도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 등 외직을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총제(摠制)로서 충청·경상·전라도의 조운체찰사(漕運體察使)가 되어 콩과 쌀을 전후 10만2000여석을 운송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말 한필을 하사받았다.
같은해 경상·전라·충청도 체찰사 겸 수군도절제사 조운염철사(漕運鹽鐵使)가 되어 3도의 주민을 동원하여 조선(漕船)을 건조하였는데, 경상도에서 111척, 전라도에서 80척, 충청도에서 60척을 각각 건조하였다.
1403년 동북면도순문사 겸 병마도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중군도총제로 명나라에 가서 백성을 본국에 환속시켜준 데 대하여 사례를 하였다.
1407년 형조판서를 거쳐 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영흥부윤이 되었다가, 1410년 다시 형조판서가 되어 명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다녀왔다. 이듬해 서북면순문사가 되었으나 1413년 평양부에서 활동하던 중 발병되어 4일 만에 죽었다.
근실하고 중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치적이 뛰어나 백성들이 기꺼이 복종하였다는 사관의 평을 받았다. 성종조에 청백리에 뽑혔으며, 1482년(성종 13)에 왕이 하사한 산 40리를 받았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