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어를 우리들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때, 사상과 감정은 영글어져 있는데, 그것에 맞는 언어를 찾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상과 감정은 언어 속에서 영글어지고 언어화의 과정 속에서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글을 잘 쓰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상과 감정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명료하게 가지도록 해주는 것이다.
작문법이란 글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지금까지 수사법(修辭法)이라는 말로 사용해왔다. 수사법이라고 할 경우에는 이미 되어 있는 글을 보다 좋은 글로 닦고 꾸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들의 사상과 감정을 형상화해 가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법보다는 더 포괄적인 범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작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1) 소재·주제·줄거리
글이란 무엇에 관해서 쓴 것이다. 이 무엇, 즉 글의 재료가 되는 것을 소재(素材)라고 한다. 글을 쓰려면 소재부터 선택하여야 한다. 소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눈에 띄는 것을 고를 수도 있고, 희귀하고 유별난 것을 고를 수도 있다.
양쪽 다 일장일단이 있다. 전자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의미를 도출하기 쉽고, 또 광범위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독자에게 진부한 느낌을 주기 쉽다. 후자는 독자의 강한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반면에, 우리의 삶과 관련된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고, 또 일부 좁은 범위의 독자에게만 호소력을 가지기 쉬운 것이다.
소재를 선택한다는 말은 그 소재에 대하여 체험하였거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다양한 소재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을 하여야 하며, 다양한 견문을 넓혀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소재에서 깊은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체험과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서 관찰하여야 한다. 소재가 선택되었으면, 그 소재를 통해서 어떠한 의미를 도출하여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곧, 주제의 결정이다. 주제는 물론 시나 소설 등과 같이 본질적으로 애매모호한 글도 있고, 논설문처럼 명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글이 있지마는, 글을 쓰는 사람은 주제적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이것이다 하고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주제가 없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이다.
소재와 주제가 결정되었으면 펼쳐갈 글의 줄거리를 작성하여야 한다. 대략적인 메모를 해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꽤 자세한 줄거리를 작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논리적인 글일수록 줄거리작성에 보다 철저하여야 한다.
반면에 문예적인 글은 개인의 상상력에 보다 더 의존할 것이다. 모든 글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지적한 것처럼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게 마련이다.
논설문 같은 경우에는 서론·본론·결론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마는 문예문의 경우에는 물론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이 세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없다는 것은 곧 그 글은 완결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다만 글의 장르와 종류에 따라 시작과 중간과 끝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2) 구성순서
글을 구성하는 순서로 우리는 대략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시간적 순서, 공간적 순서, 논리적 순서가 그것이다. 시간적 순서에 의하여 기술하는 방법은 자연적 시간의 진행에 따라 기술하는 방법이다.
가령 자서전을 쓰면서, ① 출생, ② 유년기, ③ 소년기, ④ 청년기, ⑤ 장년기, ⑥ 노년기 등의 순서로 서술한다든지, 문학사를 기술하면서, ① 고대문학, ② 삼국시대의 문학, ③ 통일신라의 문학, ④ 고려시대의 문학 등으로 기술하는 것이 이 예에 속할 것이다.
공간의 순서에 따른 구성법은 글을 공간을 단위로 해서 쓰는 방법이다. 흔히 기행문 같은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① 서울을 출발하면서, ② 동경에서, ③ 호놀룰루에서, ④ 로스앤젤레스에서 등으로 엮은 글이 이에 속한다.
공간의 구성법은 시간의 구성법처럼 전후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규칙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시나 소설 등의 문예문은 시간과 공간의 구성법에 의한 전개가 많은데, 이 양자가 잘 조화되어 구성되어 있다.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라든지,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것이라든지, 심미적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모두 시간과 공간의 구성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때문이다.
논리적 순서에 따른 구성법은 글의 맥락을 논리적인 관계 위에서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논리적 구성법은 시간과 공간의 방법처럼 직관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지적 추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다.
대체로, 전개방식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귀납적 순서, 연역적 순서, 찬반의 순서가 그것이다. 귀납적 순서는 특수한 예를 먼저 말하고 뒤에 일반적 결론을 말하는 전개방식이다.
연역적 순서는 먼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한 뒤에 그 특수한 예를 말하는 방법이다. 찬반의 순서는 서로 상반되는 주장의 장단점을 검토한 뒤에 두 주장을 절충하거나 그 장점을 받아들여 옳은 주장을 내세우는 방법을 말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통일(unity)·긴밀(coherence)·강조(emphasis) 등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것을 수사법의 3대원칙이라고 한다.
(1) 통일
통일의 원칙이란 글의 소재들이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흐트러짐 없이 통일되어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한다.
통일은 단락내에 있어서도 글 전체의 구성에 있어서로 말해질 수 있는데, 전자에서는 가능한 한 단일하고 명확한 소주제가 되도록 통일되어 있어야 하는 데 비하여, 후자에서는 다양하면서도 조화있는 짜임새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긴밀
긴밀의 원칙이란 글의 연결이 도막나지 않고, 전체가 긴밀하게 짜여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 구와 구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가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결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명시적인 방법과 함축적인 방법이 그것이다. 전자는 접속사·접속부사·대명사·명사·형용사 등 외형적으로 드러난 말에 의하여 연결되는 방법이고, 후자는 연결어는 보이지 않지마는 내용상으로 연결되는 방법이다.
(3) 강조
강조의 원칙이란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어떻게 하면 효과있는 표현이 될 수 있을까를 고려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강조의 방법에는 ㉮ 분량에 의한 강조, ㉯ 위치에 의한 강조, ㉰ 표현기교에 의한 강조 등의 세 가지가 있다.
㉮는 강조하고 싶은 내용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그리고 많은 진술을 하는 것이고, ㉯는 글의 핵심이 되는 말을 어느 위치에 두느냐(대체로 첫머리와 끝부분에 중요한 내용의 글을 둔다.)의 고려이고, ㉰는 수사상의 여러가지 장치, 이를테면 반복법·과장법·대구법 등을 사용하여 효과있는 표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글을 쓰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체로 네 종류의 언술로 나누어진다.
① 무엇에 관하여 알려주거나 설명하기 위하여 쓴 글-설명(exposition), ② 상대방이 나의 말을 믿도록 하기 위하여 쓴 글-설득 (persuasion)과 논증(argument), ③ 내가 감지한 것을 그대로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쓴 글-묘사(description), ④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해주기 위하여 쓴 글-서사(narration)가 그것이다.
(1) 설명
설명은 가능한 한 객관적이어야 하고, 또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설명에는 비교와 대조·예시·분류·정의·분석의 방법이 있다.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잘 아는 것과 비교, 대조하는 것이 좋다.
비교는 두 개의 다른 사물에서 상사점을 찾아내는 데 주의를 집중시킴에 비하여, 대조는 두 개의 사물에서 일단 공통점이 성립되면 그 상이점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는 방법이다. 예시는 어떠한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중의 특수한 예를 드는 것을 말한다. 가령, 물고기의 생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숭어를 예로 드는 경우이다.
분류는 어떠한 집단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조직을 유종(類種)의 질서에 의하여 나누는 것을 말한다. 정의란 문제된 어사가 사용될 수 있는 경계를 설정하여준 말이다.
대체로 사전에 나와 있는 뜻매김과 같은 것으로서 설명의 출발점이 된다. 분석이란 구조의 성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법이다. 물리적 분석, 기능적 분석, 인과적 분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2) 설득과 논증
설득이나 논증은 청자(독자)의 태도를 바꾸게 하여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르도록 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는 주로 감정에 호소하여 동의를 얻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후자는 이성에 호소하여 진리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설득자가 제일 먼저 성취하여야 하는 것은 피설득자와의 공통적인 지반이다. 즉, 양자간의 동일화(identification)라고 할 수 있다. 양자간에 갈등이 개재하면 설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수사학≫에서 설득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열거하고 있다.
㉮ 설득자의 인격과 믿음직스러움, ㉯ 상대의 감정을 움직여놓을 수 있는 능력, ㉰ 진실 혹은 적어도 진실같이 보이는 증거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은 단기적 설득과 장기적 설득이 있다. 증거로 제시한 사실이 다르게 밝혀짐으로써 설득과 효력이 끝나는 예는 전자에 속하고, 세계관의 변화에 의하여 설득의 효력이 끝나는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물론 영원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논증은 설득과는 달리 개인간 혹은 집단간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갈등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의심이다. 상대의 관점이나 사상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논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논증이 의심에서 비롯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은 논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1986년도의 아시안게임은 한국에서 개최되었다.”는 논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가는 문화의 기본적 조건이 된다.”는 논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논증은 명제에서 시작하여 명제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의심의 명제에서 출발하여 확신의 명제로 바꾸어놓는 과정이 논증이며 토론이 되는 것이다. 두 명제 사이를 논리적 설명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을 추론(推論)이라고 한다.
추론에는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추론이 있다. 전자는 보편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후자는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논증문의 결론은 논리적으로 검증된 타당한 결론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는 사실증거와 의견증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실험하여 증명된 사실, 자연법칙에 따른 사실,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 역사적인 사실 등이 증거로 쓰일 때는 전자의 예다.
그러나 목격자의 증언, 전문가의 의견 등을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후자의 예다. 좋은 논증문은 주장이 명확하여야 하고, 추론과정이 공정하여야 하며,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도에 기초되어 있어야 한다.
(3) 묘사
묘사에는 기술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가 있다. 전자는 사물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 후자는 감지한 것을 그대로 느끼도록 생생한 인상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통 묘사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묘사라고 해서 감지한 것을 모조리 다 기술하면 좋은 묘사문이 될 수 없다. 감지한 대상을 언어로 바꾸어 놓아야 하고, 그 언어를 통해서 다시 감지할 때의 상황처럼 재현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묘사문이기 때문에 묘사는 대상에 관한 두드러진 인상을 기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그 두드러진 인상을 위하여 감지된 소재를 선택하고 배열하여야 하며, 또 인상의 통일을 기하여야 한다. 뒤에 언급할 서사가 시간성과 관련된 기술인 점에 비하여, 묘사는 공간성과 관련된 기술이다. 따라서, 묘사는 시간적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생생함이 중요하다.
묘사의 기법으로 중요한 것은 심상(image)의 이룸이다. 심상은 언어라는 조리적 매체를 통하여 상상 속에서 공간성을 획득하게 된 지각현상이다. 좋은 묘사문은 심상과 심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실제와는 다른 참신성을 주는 글이다.
묘사는 오감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술하는 것이 원칙이지마는 특별히 시각적인 대상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다른 감각의 심상보다는 시각적 심상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고, 또 묘사로서의 효과도 큰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묘사문은 관찰자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을 시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묘사는 고정된 시점에 의한 것과 이동하는 시점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관찰자의 관심이 관건이 된다.
우리들의 감각은 특별히 관심이 가는 대상, 그 대상 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부분에 대하여 뚜렷하게 감지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좋은 묘사문은 추상적인 말보다는 구체적인 말, 개념적인 말보다는 감각적인 말을 동원하여, 대상에 대한 두드러진 인상이 통일성 있게 기술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4) 서사
서사란 행위, 즉 움직이는 삶과 관련된 언술의 일종이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의 답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서사적 행위 혹은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건이나 행위가 시간을 통해서 의미있게 변하여간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은 마디가 없는 연속이다. 그러나 서사는 시간에 대한 단위를 제공한다. 이 단위는 자족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단위에 대하여 부분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에 더 작은 단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단위를 서사적 연쇄(seguence)라고 한다.
따라서, 서사는 현실세계에서와는 달리 사건이나 행위가 자연적 시간의 순서와는 다른 체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의 사건은 A B C D의 순서로 일어났다면, 서사에서는 C D A B로 서술할 수 있고 또 다르게도 서술할 수 있는 것이다.
서사적 사건은 반드시 의미있는 연결이어야 한다. 시간적 간격과 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서사적 사건과 행위는 한편의 서사물 속에서는 의미있는 연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인과의 관계로 이어져야 하며, 사건과 행위의 의미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사에서는 시점이 중요하다. 묘사에서의 시점은 관찰자의 물리적인 시점을 가리키는 데 비하여, 서사에서의 시점은 관계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사람을 통해서 말해지고 있으며, 말하는 사람은 그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가 시점을 결정해 주는 것이다.
말해 주고 있는 사람, 즉 서술자(narrator)의 신분, 지능, 신뢰도, 작자와의 관계는 어떠하며, 그는 그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어떠한 태도로 말하고 있으며, 그 글의 내용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등이 곧 시점을 결정해주는 것이다.
시점은 대체로 인칭에 의하여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나뉜다. “나는 다짜고짜로 바둑판부터 꺼내놓았다.”에서 ‘나’ 대신에 ‘송노인’이나 ‘그’를 대체시키면 삼인칭시점이 된다.
일인칭을 다시 주인공시점과 관찰자시점으로 나누고, 삼인칭을 전지시점과 제한시점으로 나누기도 한다. 또, 시점을 서술자가 이야기 속의 인물이냐, 이야기 바깥의 인물이냐에 따라 나누고, 다시 인물의 외부만 관찰할 수 있느냐, 내부까지 관찰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서사는 대체로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서술된다. 그 때문에 그 인물에 대한 성격화의 기술(記述)이 있다. 뉴스의 스토리처럼 최소한의 성격화 기술도 있고, 소설에서처럼 성격화 그 자체가 예술의 본령이 될 수도 있다.
또, 인물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흔히 나타난다. 대화는 서사에 현장감을 주기 위하여 쓰이고 있지마는 현실사회의 실제 대화보다는 훨씬 정제(精製)된 서사적 대화라고 하여야 옳다.
서사적 행위나 사건을 서술하는 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요약제시(summary rendering)와 완전제시(full rendering)가 그것인데, 서사는 차라리 이것을 양축으로 하여 그 사이에서 서술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 네 종류의 언술은 기능상의 구분일 뿐이지 실제의 글에서는 대체로 섞여서 나타난다. 그러나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확실히 익혀두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수사법이란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동원한 여러 가지 비유적 장치와 수사적 기교를 의미한다. 수사법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비유법과 강조법이 된다.
(1) 비유법
비유법에는 직유·은유·제유·환유·중의·풍유·상징 등이 있다. 비유법에는 비유되는 사물과 비유하는 사물이 있다. 리처즈(Richards, I. A.)의 용어를 빌리면 전자를 내의(內意, tenor), 후자를 운기(運器, vehicle)라고 한다.
직유는 내의와 운기의 연결을 ‘같이’·‘처럼’과 같은 명시적 어사로 한 것이다(흰 누더기,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곳). 은유는 내의와 운기의 연결을 묵시적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직유와 은유는 상사성에 의하여 비유된다. 반면에 제유와 환유는 인접성에 의하여 비유된다. 운기와 내의가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있을 때 제유가 된다[빵 (먹을 것의 일부분)만으로 살 수 없다.]. 환유는 인접해 있던 다른 사물이 대치되어 비유로 쓰인 것이다(왕관을 버리고 떠났다.).
중의는 하나의 운기 속에 두개 이상의 내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풍유는 문장 전체가 운기가 되어 내의를 빗대어 나타낸 것이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상징은 내의가 애매모호한 운기가 이미지화되어, 상황전반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다(徐廷柱의 시에 거듭 나오는 ‘눈섭’은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2) 강조법
표현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사적 기교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강조법에는 과장법(백발이 삼천장이로다.)·반복법(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점층법(천세를 누리소서, 만세를 누리소서.)·점강법(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영탄법(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대조법(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원형법(구세주 이 땅에 오시다.)·열거법(운동화에, 국방색 당고바지에, 검정저고리에, ……)·비교법(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물결 위에, ……)·생략법(왔다, 보았다, 이겼다.)·설의법(네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인용법 (‘知者不言’이라고 노자께서 말씀하였다.)·도치법(오라! 조국의 품으로.)·대구법 (소년은 늙기가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렵다.)·반어법(썩도 잘했겠다.)·경구법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문답법(이 타는 가슴을 알겠느냐? 결코 알 수 없다.)·역설법(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