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749년(영조 25) 후손 징도(徵道)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첫머리에 이종성(李宗城)의 서문이, 권말에 정홍명(鄭弘溟)의 발문이 있고, 권두에 저자의 연보가 있다. 장서각 도서·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136수, 권2에 소(疏) 6편, 전(箋) 1편, 서(書) 5편, 권3에 제문 4편, 책(策) 4편, 서(序) 2편, 잡저 3편, 권4에 부록으로 행장·신도비명·묘지명·사제문(賜祭文) 각 1편, 제문 9편, 만사 10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칠언절구가 93수로 가장 많다.
또한, 사대부 계층의 일반적 정서와 교양의 한 표현으로서 교훈적 내용이나 의리 정신을 담은 작품이 많다. 소 가운데 「혼조간폐대비소(昏朝諫廢大妃疏)」는 1617년(광해군 9)에 올린 것으로서,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인륜에 어긋나는 처사라 하여 불가함을 주장한 내용이다.
「진시폐소(陳時弊疏)」는 1630년(인조 8)에 올린 것으로서, 이 소에서 그는 당시 정치의 폐단을 비판하고 올바른 정치를 위하여 임금이 몸소 왕도의 실천에 앞장설 것을 진언하면서 9개 항의 시정책을 건의하였다.
그 가운데 내치를 위한 것으로는 엄궁금(嚴宮禁)·중전선(重銓選)·청간쟁(聽諫諍)·명상벌(明賞罰)·택수령(擇守令) 등을 들었고, 국방에 관한 것으로는 택장수(擇將帥)·초무력(招武力)·치둔전(治屯田)·정성지(整城池) 등을 들었는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잡저의 「예설(禮說)」은 예학에 대한 깊은 연구를 보여 주고 있다. 「유산록(遊山錄)」은 1628년 강릉 부사로 나가 있을 때 두 아들 현기(顯基)·선기(善基), 친지 박시창(朴時昌) 등과 함께 금강산을 구경하고 쓴 기행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