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인(雜學人)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잡술인은 천문(天文)·지리(地理)·명과(命課) 등의 음양학에 종사하는 사람을 통칭한다.
이들은 음양술수(陰陽術數)를 통해 택지(擇地)와 택일(擇日) 등을 맡았으며, 복서(卜筮:길흉을 점침)를 통한 의료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차대를 받았다.
조선은 유교사회이므로, 기예에 능숙한 잡술인들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편히 다스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과(文科)에 합격한 양반이라 하더라도 잡술(雜術)에 능하면, 조정에서는 천대했다. 따라서 유사(儒士)들은 잡술을 겸임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잡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쉽게 관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때로 성취한 효과가 검증되기도 전에 녹(祿)을 주거나 관직에 서용하는 경우도 있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실록을 보면 잡술인은 주로 요사한 술법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764년(영조 40)에는 중외(中外)의 무복(巫卜)·잡술(雜術)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1796년(정조 20)에는 청(淸)의 사행시 이단(異端)과 잡술에 관한 서책을 반입하는 것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