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이칭
이칭
호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내용

고려 중앙군의 3번째 서열의 신분이다. 고려시대의 중앙군은 2군6위(二軍六衛)였고, 그 병력 수는 45령(領, 1령은 1,000명)이었다. 여기에는 최고지휘관으로 상장군(上將軍, 정3품)과 대장군(大將軍, 종3품)이 있었고, 그 바로 밑에 장군이 배치되었다. 장군은 위로는 상장군과 대장군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2군6위의 각 영에 1명씩 편성되어 각 영을 실질적으로 통솔하였다. 고려말 공민왕 때에는 장군을 호군(護軍)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로써 보면 고려시대의 장군 수는 2군6위에 소속된 45명으로 볼 수 있지만, 고려말 공민왕 때에는 충용위(忠勇衛)에 4인이 더 있었다.

장군들의 합의기관으로는 장군방(將軍房)이 있었는데,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기구였던 중방(重房)을 보좌하였다. 하지만 무신정권과 같은 혼란한 시기에는 중방과 대립하여 군령(軍令)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1076년(문종 30)의 전시과에 의하면 제5과에 속하여 전(田) 75결(結)과 시(柴) 30결을 지급받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군제사』(육군본부 편, 육군본부 군사연구실, 1983)
『고려병제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6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