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앙군의 3번째 서열의 신분이다. 고려시대의 중앙군은 2군6위(二軍六衛)였고, 그 병력 수는 45령(領, 1령은 1,000명)이었다. 여기에는 최고지휘관으로 상장군(上將軍, 정3품)과 대장군(大將軍, 종3품)이 있었고, 그 바로 밑에 장군이 배치되었다. 장군은 위로는 상장군과 대장군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2군6위의 각 영에 1명씩 편성되어 각 영을 실질적으로 통솔하였다. 고려말 공민왕 때에는 장군을 호군(護軍)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로써 보면 고려시대의 장군 수는 2군6위에 소속된 45명으로 볼 수 있지만, 고려말 공민왕 때에는 충용위(忠勇衛)에 4인이 더 있었다.
장군들의 합의기관으로는 장군방(將軍房)이 있었는데, 상장군과 대장군의 합의기구였던 중방(重房)을 보좌하였다. 하지만 무신정권과 같은 혼란한 시기에는 중방과 대립하여 군령(軍令)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1076년(문종 30)의 전시과에 의하면 제5과에 속하여 전(田) 75결(結)과 시(柴) 30결을 지급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