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사인 장계문(張季文)이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을 제수받았고, 군수에 이르렀다.
효도가 극진하였으며 부모가 병중일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게 하였으며, 상을 당해서 묘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이로 인하여 예조에서 계를 올려 1553년(명종 8) 정문이 세워지고 복호(復戶: 조선시대에 충신·효자 등에게 주던 부역이나 조세 면제의 특전)되었다.
증산현령 역임 시 흉년 구제를 잘하여 평안도어사 이산보(李山甫)의 계로 표리(表裏: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겉과 속의 옷감) 한 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