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과거에 등제한 적은 없으나 인조반정 시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됨으로써 관직에 나갔다. 개천군수를 역임하다가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안주전투에 참여하였다.
당시 상관인 남이흥(南以興)에게 성을 지킬 군사는 결국 민정(民丁)이니 포(砲)의 배치를 백성 중심으로 하자는 건의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침내 성이 함락되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이 때의 공훈으로 1627년 옥산군(玉山君)에 봉하여졌으며, 그 뒤 1681년(숙종 7) 안주에 순절자를 위한 충민사(忠愍祠)가 건립되었을 때 그곳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