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교회·솔내교회(松泉敎會)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교회로서 서상륜(徐相崙)이 동생 경조(景祚)와 함께 교향에 세운 것이다. 건립과 운영을 자급자족하였고, 건축양식도 기와집의 전통적 가옥이었다.
후에 선교사들이 이 교회를 방문하여 한국인 주도의 교회생활과 학교교육 등을 관찰하기도 하였다. 1888년 인도의 대기근 때에는 68달러의 막대한 구제금을 보낸 일도 있다. 1895년 동학도들이 몰려와 교회가 위험하기도 하였지만, 캐나다의 선교사 매켄지(Mckenzie, W. J.)와 한국교인들의 복음증거로 1만여 동학도와 우호적 관계가 맺어져 이 지방의 난을 모면하게 할 수 있었다.
실제로 1896년언더우드(Underwood, H. G.)목사가 이곳에 왔을 때 동학군의 지휘관급 2명이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 교회는 처음으로 한국인들 손에 의하여 세워지고, 최초의 장로 장립, 동학과의 해후 등이 이루어진 역사적 교회로서, 김명선(金鳴善)·노천명(盧天命)·김필례(金弼禮)·양주동(梁柱東) 등이 이 곳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