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을 ‘적호기’라고 한 것은 ‘병인(丙寅)’의 ‘병(丙)’이 붉은 색이고 ‘인(寅)’은 호랑이를 뜻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내용은 주로 의정부, 순무영, 훈련도감, 총융청, 종친부, 금위영 등의 초기(草記) 계문(啓文) 전령(傳令) 등이 날짜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편집 체제나 내용이 『어양수록(禦洋隨錄)』과 비슷한 점이 많다. 1866년 1월 1일부터 시작해 병인양요에 관한 기술뿐만 아니라 프랑스선교사와 천주교도를 체포해 처형하기까지의 과정을 적고 있다. 그리고 1867년 2월의 북병사 정기원(鄭岐源)의 ‘아라사국인(俄羅斯國人)과의 문답기(問答記)’까지 기술하고 있다.
한편 병인양요 직전 왕비책봉주사(王妃冊封奏使) 유후조(柳厚祚)의 반당(伴倘)으로 연경에 가서 청국 정부와 그곳 관민들로부터 프랑스의 조선 침공에 대한 정보와 이에 대한 방어책 등을 탐지해 대원군에게 제보한 강화유생 심유경(沈雄慶)의 사서초(私書草)가 실려 있다.
이 외에도 부사 서당보(徐堂輔)의 중국인과의 필담초(筆談草)를 비롯해 강화 승천보(昇天堡)에서 엠페러호(Emperor號)의 오페르트(Oppert, E.)와 대담한 문정역관 방우서(方禹敍)·이응인(李應寅)의 문답초(問答草), 평안도관찰사와 의주부윤이 대원군에 사적으로 제보한 기백사서초(箕伯私書草)와 만윤사서초(灣尹私書草), 이지원(李止遠)의 사곡이씨일기(沙谷李氏日記) 등이 있다.
이것들은 당시 정부기록이나 다른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이 책의 특징은 중요 사건마다 정부 각사의 기록을 인용한 다음에 저자의 사견(私見)이 일종의 각주(脚註)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 문수산성(文殊山城)의 전투나 전등사(傳燈寺)의 전투에 대한 평론은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책은 대원군집권기의 쇄국양이 정책을 위정척사론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으로 병인양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아세아문화사에서 서벽외사해외수일본총서(栖碧外史海外蒐佚本叢書)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