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전력노동조합 ()

사회구조
단체
정부 투자 기관인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여 조직된 전국 규모의 단일 노동조합.
이칭
이칭
전력노조
목차
정의
정부 투자 기관인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여 조직된 전국 규모의 단일 노동조합.
변천 및 주요 활동

해방 이후 1946년 11월 24일 처음 결성된 전력 관련 노조는 경성전기노조였다. 경성전기노조는 노총통합 등 한국 노동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으며, 정부 수립 이전에 노동조합 설립신고 1호로 처음으로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1947년에 체결된 단체협약은 한국 최초로 노사 교섭에 의하여 체결된 사례로 이후 1953년 노동관계법 제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전력 관련 노조는 경성전기노조 이외에도 1949년 결성된 조선전업노조, 1955년에 결성된 남선전기노조가 있었다. 이 3개 전력회사 노동조합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부 포고령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 전기 3사가 통합되어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설립됨에 따라, 같은 해 8월 22일 한국전력노동조합 창립대회가 열렸으나 김진규 위원장이 정부 지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강제로 결성 무효가 되었다. 9월 22일 재결성대회를 통해 21개 지부, 88개 분회, 총 조합원수 7,997명으로 한국전력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1962년 3월에는 전국전력노동조합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7년 5월 남선전기노조가 해산했고, 1968년 11월 경성전기노조의 모체가 된 운수지부가 해체되었다. 1978년 노조창립 기념일을 통합노조 결성일에서 최초의 전력 관련 노조인 경성전기노조 창립기념일(1946년 11월 24일)로 변경하였다.

전국전력노동조합은 1981년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하여 퇴직금 누진율을 삭감 당하였으며, 1987년에는 단체교섭 결과 종전 55세이던 정년을 58세로 연장하였고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하였다. 1999년 말 공기업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임금과 복지수준 향상이라는 전제조건하에 전 공기업의 퇴직금 누진제가 폐지되었다. 1988년 비조합원이었던 상용원의 노조 가입이 인정되어 1990년 초에 조합원이 3만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995년 한기공노조(전 한국전력보수주식회사 노조, 조합원 3,500명) 분리와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인원 감축(6,234명) 및 명예퇴직 및 자연 감소 증가로 전체 직원 3만 4,607명, 조합원 2만 4,225명으로 조합원수가 감소하였고, 2010년 현재 조합원은 16,416명이다.

1998년 2월부터 공기업 민영화 및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2002년 10월 전력·발전·철도·가스·공공연맹은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출범시켰다. 2003년 7월 전력연대(전력관련 노동조합 연대회의)를 조직하였고, 2006년 4월 전력노조 등 13개 노조 참여로 ‘정부투자기관노동조합 협의회’ 발족시켰다. 전력연대는 2007년 7월 ‘전력사 증시상장 반대 투쟁’을 선포하고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2008년 9월 ‘전력산별노동조합’ 출범 선언을 하였다.

참고문헌

『2010년 사업보고서』(한국노총, 2010)
『한국의 노동조합』(한국노동연구원, 1989)
『전력노조 40년사』(전국전력노동조합, 1988)
『전국전력노동조합 활동보고』(전국전력노조, 각 년도)
전국전력노동조합(power.inochong.org)
집필자
류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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