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선(旌善). 호는 채미헌(採薇軒). 대제학(大提學) 전분(全賁)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고관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창업되자,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인물로서 유명하다.
1373년(공민왕 22) 과거에 급제하였다. 1391년(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형조판서(刑曹判書)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년(공양왕 4)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이때 본향안치된 인물이 성석린(成石璘)·이윤굉(李允紘)·유혜손(柳惠孫)·안원(安瑗)·강회중(姜淮中)·신윤필(申允弼)·성석용(成石瑢)·정희(鄭熙) 등인데, 이들 중 성석린과 같이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살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뒤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 강원도 정선 소재)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경상남도 안의(安義)에 소재한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전오륜의 유고(遺稿)와 행적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책이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