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필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정군필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정군필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를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원용(元鎔)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3년(고종 20)
사망 연도
1973년
출생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를 참여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원용(元鎔).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면(洪冕)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사강리 장날인 28일에도 홍면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군중이 사강리 뒷산에 모여 전개한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일본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군중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쳤고, 일본경찰은 주동자 홍면 외 2명을 붙잡아 꿇어앉혀 놓았다.

그러나 홍면이 갑자기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노구치가 권총을 발사하여 총알이 홍면의 어깨를 관통하였다. 홍면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며 자기에게 발포한 일본경찰을 죽이라고 외쳤다. 이 광경을 본 독립만세 시위군중이 일시에 분노하여 노구치에게 달려들자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이 때 격분하여 홍면의 동생 홍준옥(洪㻐玉), 장인 김명제(金命濟), 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김교창(金敎昌) 등과 함께 추격하여 미처 주재소에 다다르지 못한 일본경찰을 도로에서 포위하여 투석으로 격살시키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잡혀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2(국가보훈처, 1986)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