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근(鄭僅)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으로 추증되었고, 어머니는 김행경(金行瓊)의 둘째 딸로서 영광군태군(靈光郡太君)으로 추증되었다. 1094년(선종 11)에 지공거(知貢擧) 이예(李預), 동지공거(同知貢擧) 위계정(魏繼廷)이 주관한 과거에서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 내인(內人)으로서 왕명을 받들어 사천소감(司天少監) 최자현(崔資顯), 태사령(太史令) 음덕전(陰德全)·오지로(吳知老), 주부동정(主簿同正) 김위제(金謂磾) 등과 함께 서경(西京)에 가서 새 궁궐을 창건하기 위하여 용언(龍堰)의 옛 터를 보고 왔다. 이 일에 대해 당시 대부분의 관료들은 서경의 궁궐 창건과 순행을 찬성했지만,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이 반대하여 실행되지 못하였다.
1110년(예종 5)에 서경유수판관 예부원외랑(西京留守判官禮部員外郞)으로 재직하였다. 1116년(예종 11)에는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 정3품)에 임명되었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