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룡(鄭龍)은 고려 후기의 수군 장수로서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 사료에는 공민왕(恭愍王) 대에는 최영(崔瑩)과 제주(濟州) 목호(牧胡) 정벌에 참가하였으며, 우왕 대 왜구(倭寇)의 침략이 극심해지자 주로 왜구 방어와 격퇴에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374년( 공민왕 23) 7월에 공민왕은 중국 명나라에 바칠 공마(貢馬)를 조달하기 위해 제주의 목호를 정벌하기로 하였다. 제주는 이미 중국 원(元)나라에 수차례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고려는 제주를 직접 정벌하여 영토적으로 지배하고자 여러 차례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다가 공민왕 말에 중국 명나라와 외교관계가 어려워지자 조정에서는 외교관계를 복구하기 위해 제주 목호들이 기르고 있는 말 2,000필을 명나라에 바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목호들이 300여 필만 보내오자, 제주를 직접 정벌하기로 하고 최영을 양광 · 전라 · 경상도 도통사(楊廣全羅慶尙道都統使)로 임명하였다. 이때 정룡(鄭龍)은 전임 부령(副令)으로 참전하여 최영의 명에 따라 전함 40여 척을 거느리고 목호들을 포위 공격하였다.
1377년(우왕 3) 6월에는 전라도 수군 도만호(都萬戶)로서 제주에 침략한 왜선 200여 척과 싸워 배 1척을 노획하고 이들을 섬멸하였다. 왜구가 그해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순천과 낙안(樂安) 등지에 침략하였는데, 정룡은 2차 침략 때 순천도병마사(順天都兵馬使) 정지(鄭地)와 함께 싸웠으며, 우왕에게 승전보를 전하여 베 200필과 말 1필을 하사받았다.
또한,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의 비장(裨將)으로 연안부(延安府: 지금의 황해남도 연안군)에 침략한 왜구를 격퇴하는 데 참여하여 공을 세워 우왕으로부터 은 50냥을 하사받았다. 1379년 4월에 1차례, 1385년(우왕 11) 6월에 두 차례 왜구를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