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권3~4는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보물 제736호이다.
『정명경집해관중소』 권3~4는 당나라 자성사(資聖寺)의 문도였던 도액(道液)이 진나라 승조가 『유마경(維摩經)』의 해석을 모은 주해본을 바탕으로 다시금 주소(註疏)한 것이다. 이 주소본은 현재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고초본(古抄本) 상하 2권 완본과 초략본(抄略本)이 전하고 있다.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에서 입수하여 간행한 교장본(敎藏本)은 본래 4권이었으나,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에 소장된 판본은 권3과 권4만이 남은 영본(零本)이다. 권3에는 제5품인 「문수사리문질품」으로부터 제8품인 「불도품」까지, 권4에는 제9품인 「입불이법문품」으로부터 제14품인 「촉루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표지는 표제가 묵서(墨書)된 것으로 보아 세조 때 만들어진 원간본(原刊本)이 아니라, 불복장(佛腹藏)에서 나온 것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책의 크기는 34.4cm×29.5cm이다. 권3의 권수제가 있는 면을 살펴보면, 권수의 서명은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이며, 그 다음 행에 ‘중경자성사사문도액집(中京資聖寺沙門道液集)’이라고 저자가 표시가 되어 있다. 윗변의 천두에는 '용재백락준장서(庸齋白樂濬藏書)'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어, 이 책이 본래 문교부 장관 및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의 구장본(舊藏本)임을 알 수 있다.
각 장의 끝부분에는 ‘정명관중소(淨名關中疏)’라는 판미제와 권장차가 기입되어 있으며, 각 권의 끝에는 ‘수창원년을해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壽昌元年乙亥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라는 간기가 기재되어 있다.
판식의 특징을 보면, 변란(邊欄)은 상하단변(上下單邊)으로 되어 있어 처음부터 권자(卷子)나 첩장(帖裝)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상하 간 광곽(匡郭)의 높이는 22.5cm이다. 권자나 첩장을 염두에 두고 판을 새겼기 때문에 중앙에 판심은 없으며, 접은 면을 기준으로 반엽(半葉)에는 15행, 한 행에는 20자씩 배치하고 있다. 권수제가 기재되어 있는 부분에만 계선이 보이며, 그밖에는 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각 품의 품차 구별은 별도의 행으로 구분하지 않고 본문에 포함하여 기재하고 있다. 본문에는 먹으로 구결을 달았으며, 구결 사이사이에 붉은 글자로 교정한 흔적이 보인다.
이처럼 이 책에는 처음 간행되었던 원간본에 기재된 간기가 그대로 판각되어 있어 판본의 식별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자체(字體) 등에서 나타나는 판식의 특징을 보면, 조선 세조 때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낡은 판을 고쳐 새로 찍어낸 것을 알 수 있다. 종이의 질을 보면, 조선 세종 이후 사용된 고정지(藁精紙)가 섞여 있다.
『정명경집해관중소』 권3~4는 대각국사 의천이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권1에 편차(編次)하여 간행한 교장본(敎藏本)이다. 『정명경』의 해석본으로는 돈황본과 이 책만이 현전하고 있는데, 돈황 고초본에는 글자를 잘못 베낀 부분이 많이 보이고 본문의 순서가 뒤바뀐 곳도 있으며, 본문의 일부를 빠뜨린 것도 보인다. 심지어 승조(僧肇)의 주소(註疏) 전문이 빠진 곳도 있어, 이러한 오기 · 탈락 · 일문(逸文) 등을 이 책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