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운곡(雲谷). 할아버지는 몽주(夢周)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종성(宗城)이다.
학문이 뛰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한때 예안현감으로 나갔다가 감찰이 되었다.
일찍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를 맺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6월에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인척 되는 한명회(韓明澮)에게 사육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자 천추의 악인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한명회가 그 해 12월 그를 난언죄(亂言罪)로 고발하여 죽음을 받게 하였으나, 세조는 그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손자임을 감안하여 죄질을 한 등급 감하여 연일(延日)에 유배시켰다. 그 뒤 단성으로 이배되었다가 간사한 무리들의 참소로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1699년(숙종 25) 지경연사(知經筵事) 이유(李濡)의 상소로 신원(伸寃),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용인의 충렬서원(忠烈書院)에 제향되었으나 대원군 때 서원이 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