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생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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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전산문
작품
조선시대에, 김기가 지은 고전소설.
작품/문학
작가
김기(金琦)
내용 요약

「정생전」은 조선시대에 김기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사대부인 정생은 중인 출신의 여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배신을 하게 되고, 여주인공은 아들 하나를 남긴 채 자살하고 만다. 정생은 그 아들마저 매몰차게 버리지만 결국 아들과 상봉하게 되고 여주인공과의 전생 인연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정의
조선시대에, 김기가 지은 고전소설.
저자

김기(金琦, 1722~1794)는 「정생전」 외에도 「황생전(黃生傳)」을 창작하였다. 당시는 청(淸)나라의 다양한 학문이 조선으로 수입되던 시기였는데, 김기는 평생 주21로 지내면서 천문학, 병법(兵法), 실학(實學)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깊은 사색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경학(經學)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용적인 학문과 박학을 함께 추구하였으며, 당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황생전(黃生傳)」에는 북벌론(北伐論)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내용

1권 1책. 한문 필사본. 남녀 주인공의 연애담(戀愛談)과 아들의 효행(孝行)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생(丁生)은 경기도 양근현에서 주1의 아들로 태어나, 10세 전에 부모를 여의고 서울에 사는 고모부 권 상서에 의탁하여 자란다. 장성(長成)한 정생은 용모가 단정하고 재주가 뛰어나 주위의 칭송(稱頌)을 받는다.

정생은 봄날 봄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3 주2의 딸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다. 얼마 후 그녀가 정생에게 편지를 보내어, 처녀로 임신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패물(佩物)을 팔아 같이 살림을 차리자고 한다. 정생은 이 사실을 고모에게 고백할 수 없어 주저하고 있는데, 고모부 권 상서가 청풍부사로 좌천(左遷)되면서 정생은 권 상서와 같이 청풍으로 가게 된다.

어느 날 밤 홀연 그녀가 정생에게 나타난다. 그녀는 아들을 낳아 유모에게 맡기고 자살한 일을 말하고, 모년 모월 모일에 서울 광통교에 가면 유모가 아들을 데리고 나와 있을 것이라고 일러 준 후 사라진다. 그 뒤 정생은 서울에 올라와 양반집 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고 재산도 모으고 이름도 높아졌다.

정생은 그녀의 원혼이 일러준 날 광통교에서 아들을 만나 데려오다가, 집안의 분란(紛亂)이 두려워 도중에 아들을 떼어 놓고 도망쳐 버린다. 그 뒤부터 정생은 재산을 탕진(蕩盡)하여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갔다. 그러다 정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속리사로 수양(修養)하러 간다.

하루는 묘향산에서 온 명승(名僧)이 암자에 있는 정생을 찾아온다. 죽은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며, 자기가 지난날 광통교에서 정생에게 버려진 그 아들이라고 한다. 정생의 아들은 승려 생활을 중단하고 지성(至誠)으로 정생을 봉양(奉養)하기 시작한다. 정생은 신선(神仙)의 주24를 익히고, 정생의 아들은 신인(神人)의 주12를 받고 주13을 캐다가 정생에게 먹인다.

정생의 아들은 도술을 부려 아버지 정생과 함께 바람을 타고 수미산(須彌山) , 주17으로 가서 주14주15를 구경하고 돌아온다. 정생은 유신법(遊神法)을 써서 저승으로 가서 그녀를 만났고, 그녀와 전생에서의 인연을 알게 된다. 현세(現世)로 돌아온 정생은 본가에 있는 아들을 불러오라고 하여, 명승인 큰아들에게는 도를 닦아 주18하라고 이르고, 작은아들에게는 가문을 지키라고 이르고 죽는다. 정생의 큰아들은 생모와 유모의 묘소를 아버지 묘소 옆으로 이장(移葬)하고는 다시 승려로 돌아간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유교(儒敎) · 불교(佛敎) · 도교(道敎)가 융합되어 사상적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매우 독창적인 구성과 주제를 지닌 소설이다. 당시 시대적 사회상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신분이 서로 다른 양반의 아들과 서리 딸의 연애는 일반적이지 않은 남녀 간의 결합이다. 이러한 신분상의 차이와 정생의 처지로 인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다시 버리는 정생은 사랑의 배신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습할 능력도 용기도 없는 무능력한 서생(書生)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생에게 버림받았던 아들이 명승이 되어 돌아와 승려 생활을 중단하면서까지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가 효행을 강조함을 말해 준다.

정생은 현실을 도피하고 주23를 지향하는 선계 추구자의 정형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며, 중인(中人) 출신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은 조선 후기 중인 계층의 성장이 소설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차용주, 『한국한문소설사』(아세아문화사, 1992)

논문

김수현, 「기헌(寄軒) 김기(金琦) 연구」(『고전문학연구』 24, 한국고전문학회, 2003)
주석
주1

시골에 내려가 살면서 여러 대 동안 벼슬을 못하던 양반. 우리말샘

주2

관아에 속하여 말단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구실아치. 고려 시대에는 중앙의 각 관아에 속한 말단 행정 요원만을 가리켰으나, 조선 시대에는 경향(京鄕)의 모든 이직(吏職) 관리를 뜻하였다. 우리말샘

주3

고려 시대에, 육조(六曹) 가운데 문관의 선임(選任)과 훈봉(勳封)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공양왕 원년(1389)에 전리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주4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 우리말샘

주5

낮은 관직이나 지위로 떨어지거나 외직으로 전근됨을 이르는 말. 예전에 중국에서 오른쪽을 숭상하고 왼쪽을 멸시하였던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주6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움. 우리말샘

주7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 우리말샘

주8

학식이나 덕행이 높은 이름난 승려. 우리말샘

주9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주10

지극한 정성. 우리말샘

주11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웃어른을 받들어 모심. 우리말샘

주12

가르쳐서 보임. 우리말샘

주13

어린아이 모양처럼 생긴 산삼. 우리말샘

주14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우리말샘

주15

중국 곤륜산에 있다는 못. 신선이 살았다고 하며,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우리말샘

주16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산. 꼭대기에는 제석천이, 중턱에는 사천왕이 살고 있으며, 그 높이는 물 위로 팔만 유순이고 물속으로 팔만 유순이며, 가로의 길이도 이와 같다고 한다. 북쪽은 황금, 동쪽은 은, 남쪽은 유리, 서쪽은 파리(玻璃)로 되어 있고, 해와 달이 그 주위를 돌며 보광(寶光)을 반영하여 사방의 허공을 비추고 있다. 산 주위에 칠금산이 둘러섰고 수미산과 칠금산 사이에 칠해(七海)가 있으며 칠금산 밖에는 함해(鹹海)가 있고 함해 속에 사대주가 있으며 함해 건너에 철위산이 둘러 있다. 우리말샘

주17

중국 전설상의 높은 산. 중국의 서쪽에 있으며, 옥(玉)이 난다고 한다. 전국(戰國) 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西王母)가 살며 불사(不死)의 물이 흐른다고 믿어졌다. 우리말샘

주18

부처가 되는 일. 보살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덕을 완성하여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19

무덤을 옮겨 씀. 우리말샘

주20

조선 시대에,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있던 신분 계급. 세습적인 기술직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15세기부터 형성되어 조선 후기에는 하나의 독립된 신분층을 이루었다. 기술관 및 향리, 서리, 토관, 군교(軍校), 역리(驛吏) 등 경외(京外) 아전과 양반에서 격하된 서얼 등이 해당한다. 우리말샘

주21

벼슬이 없는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2

조선 효종 때와 숙종 초에, 병자호란의 수모를 씻기 위하여 청나라를 공격하고자 한 주장. 우리말샘

주23

신선이 산다는 곳. 우리말샘

주24

도교의 연단법(鍊丹法)을 기록한 책. ‘연단법’은 예전에 중국에서 도사가 진사(辰沙)로 황금이나 불로불사의 묘약을 만든 술법이다.

주25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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