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단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차로 발굴되었다.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동강(東江) 언저리에 있는 이 유적은 영월과 정선의 중간지점에 있다. 유적의 동쪽과 북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에서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소골마을의 아늑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이 병풍바위의 절벽 아래로 동강이 굽이치며 흐른다.
Ⅰ지구에서 겉으로 드러난 뚜껑돌의 수는 2∼3기 정도였으나, 발굴을 통해 확인된 고인돌의 유구는 5기에 이른다. 복원이 가능한 2기의 고인돌 하부구조는 길이 축을 동강의 물줄기와 같은 남북방향을 하고 있다. 고인돌 유구의 널 안에서 멧돼지 위턱의 부스러기와 송곳니,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조각, 돌끌 등이 나왔다. Ⅰ지구의 고인돌 언저리에서 민무늬토기조각, 반달칼 · 돌괭이 등이 발견되었다.
Ⅱ지구의 신석기시대층에서는 새김무늬토기조각, 그물추 등이 여러 점 나왔다. 이들 토기 중에는 남해안의 욕지도와 상노대도, 영동군 금정리 유적 등에서 찾은 바 있는 밭떼기무늬토기가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한편,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사용되었던 덧무늬토기 입술조각이 Ⅱ지구에서 발견되었다. 이 덧무늬토기는 제천 황석리에서 나온 것과 생김새가 아주 닮아 주목되는데, 동삼동 및 남해안 유적에서 나온 것보다 굵고 두터운 느낌을 준다. 북한에서는 함경북도 굴포의 신석기시대층을 비롯해 강계 심귀리와 용천 신암리의 청동기시대층에서 소골의 덧무늬토기와 닮은 것이 나오고 있어, 이들 유적의 비교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Ⅱ지구의 청동기시대층에서는 민무늬토기 · 돌화살촉 · 그물추 · 반달칼 · 돌보습 · 돌단검조각, 갈돌판과 갈돌대, 숫돌, 붉은간토기와 구멍토기〔孔列土器〕조각, 돌공이 · 대롱옥 등이 나왔다. 유구로는 3기 이상의 집터가 드러났다. 집터 안에서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네모형태의 화덕 2기가 발굴되었다.
우리 나라 중부 내륙지방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적은 충주댐 수몰지구의 문화유적조사작업을 통해 그 성격이 어느 정도 밝혀진 바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한 발굴성과와 함께 덕천리 소골 유적에서 드러난 유물과 유구는 중부 내륙지방에서 전개되었던 선사문화의 성격을 밝히는데 중요한 구실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소골 유적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물은 중부 내륙지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온 것으로, 남한강 상류지방에 퍼져 살았던 신석기시대 주민의 생활영역과 모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골 유적의 신석기문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청동기문화로 이행되었는가를 밝히는 작업은 앞으로 자세하게 검토되어야 할 연구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