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순년(舜年), 호는 곡구(谷口). 정용(鄭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시성(鄭始成)이고, 아버지는 정인빈(鄭寅賓)이며, 어머니는 조문망(趙門望)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3년 세자시강원사서에 임용되었으며, 사간원정언을 거쳐 1716년 서명균(徐命均)·이진망(李眞望) 등 16인과 함께 홍문록에 올랐다.
1722년(경종 2) 사간원정언으로서 경종이 병약하고 후사(後嗣)가 없음을 이유로 왕세제(王世弟: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청한 김춘택(金春澤) 등을 탄핵하였다. 같은 해 7월 홍문관수찬으로 전보되어 이후 사간원사간·홍문관수찬·사헌부집의, 홍문관의 부교리·부응교 등을 지냈다.
1725년(영조 1) 경종의 즉위와 더불어 발생한 왕세제의 대리청정문제로 야기된 신임사화의 주동인물로 탄핵되어 강현(姜鋧)·이조(李肇) 등과 함께 삭탈관작되고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 이 때 사간원에서는 그를 극변(極邊)으로 유배시킬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727년 10월 대사간으로 복직된 이후 승정원승지·대사성·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734년 개성유수로 전보되었다. 1736년 대사헌에 임용되어 서울로 올라와 지돈녕부사·우참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기로당상(耆老堂上)이 되었다. 1753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