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심(仲深), 호는 송곡(松谷). 증조부는 종부시령(宗簿寺令) 정유(鄭侑), 할아버지는 평리상의(評理商議) 정사도(鄭思道), 아버지는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정홍(鄭洪), 어머니는 오중화(吳仲和)의 딸 동복오씨(同福吳氏)이다. 부인은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안평대군 이용(李瑢)의 장인이다.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지평에 재직 중 당시 수상(首相)이던 하륜(河崙)을 탄핵한 일로 순금사(巡禁司)에 내려져 국문을 받았으나 속죄되어 풀려났다. 도관(都官)·정랑을 거쳐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에 올랐다.
1420년(세종 2) 다시 장령이 되었을 때 상왕(上王: 태종)이 철원에 가려는 것을 간하다가 진산에 유배되었다. 1424년 다시 장령이 되고, 이어 선공감정·집의·동부대언, 형조·이조·병조의 참판을 지냈다.
1430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인순부윤(仁順府尹)·중추원사, 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442년 사은 겸 주문사(謝恩兼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