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동·서로 분당되었던 당파 가운데 동인은 다시 남·북으로 갈리고, 선조 말년에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나누어졌다.
즉, 왕위계승에 있어서 광해군을 지지하던 파를 대북이라 하였으며,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파를 소북이라 하였던 것이다. 1608년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함에, 일찍이 유영경을 탄핵하다가 귀양갔던 대북파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이 돌아와 소북파인 유영경·이홍로(李弘老) 등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소북파 제거의 공으로 위태롭던 사직을 안정시켰다고 하여 1612년(광해군 4) 공신에 책록되었는데 이들을 정운공신이라 한다. 처음 책정될 때는 정인홍·이이첨·이산해(李山海)·이성(李惺) 등을 포함하여 1등은 수성결의분충효절정운공신(輸誠結義奮忠效節定運功臣) 2인, 2등은 수성분충정운공신(輸誠奮忠定運功臣) 5인, 3등은 수성정운공신(輸誠定運功臣) 4인 등 모두 11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산해와 이이첨 둘이서 상의하여 책록하였기 때문에 이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책록된 사람 중 사양하는 자들도 있어 실제 받은 자는 3인에 불과하였다.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유영경 등이 신원됨으로써 폐삭(廢削)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