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이며 호는 취은(醉隱)이다. 조선중기 사대부 화가 정경흠(鄭慶欽)의 넷째아들이자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화가 중의 한 사람인 심사정(沈師正)의 외종조부이다. 사대부 화가였던 그는 사람됨이 온화하여 비록 뛰어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스스로 자신의 재주를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기예가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르다고 평가되었다.
벼슬은 현감을 지냈으며, 1713년(숙종 39) 숙종어진모사도감(肅宗御眞模寫都監)의 감조관(監造官)으로 발탁되어 어진모사에 참여하였는데, 1748년에 심사정이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의 감동(監董)으로 발탁된 것도 그의 외손이기 때문이었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제1025책 영조 24년 무진 1월 20일조).
『연려실기술』 별집에 의하면 정유승은 포도·인물그림에 능하였다고 한다.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으며, 김명국의 인물을 배웠으나 오로지 인물의 기상을 중시하여 기세를 크게 펼쳤지만 처리가 긴밀하거나 정교하지 못해 김명국의 거친 면을 얻어내는데 지나지 않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김명국의 일파였다고 전하지만 김명국이 화원 화가였으므로 정유승이 인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김명국의 양식을 따랐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의 인물화풍은 심사정의 인물화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심사정의 도석인물화를 보면 거친 필선을 사용해 간결하게 그린 작품이 많아 김명국 인물화풍의 맥락을 잇고 있는데, 정유승의 인물화가 김명국 일파에서 나왔다고 하므로 그 영향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유작으로 원숭이들이 노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나타낸「군원유희도(群猿遊戱圖)」(간송미술관 소장)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