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씨(金氏). 호는 일암(日庵). 낭천현(狼川縣 : 지금의 강원도 화천) 관불촌(觀佛村) 출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머리 위에 해가 임하는 태몽을 꾸고 낳았으며, 어려서 모래를 쌓아 탑을 만들고 꽃을 공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불종(佛鐘)이라 하였다.
16세에 설우(雪祐)를 찾아가 삭발하였으며, 20세에 도안(道安)에게 가르침을 청한 뒤, 도암의 제자 추붕(秋鵬)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그 뒤 선과 교를 함께 닦았다. 특히, 강원의 교과서인 『능엄경(楞嚴經)』·『기신론(起信論)』·『반야경』·『원각경(圓覺經)』·『화엄경』·『전등록(傳燈錄)』·『선문염송(禪門拈頌)』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깊이 탐독하였다.
선에 있어서는 화두(話頭)인 ‘만법귀일(萬法歸一)’과 ‘조주무자(趙州無字)’를 중요시하였다. 그 뒤 국내의 명산대찰을 순례하였고, 금강산건봉사(乾鳳寺)와 설악산 내원암(內院庵)에 머무르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765년 10월 22일 건봉사의 암자인 백화암(白華庵)에서 제자들을 모아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제자 무외(無畏)에게 “사대(四大)가 조화를 잃었으니 이제 가리라.” 하고 나이 91세, 법랍 76세로 입적하였다. 다비 일 저녁에 서기가 하늘을 뻗쳤으며, 정골(頂骨) 한 조각을 소나무 가지에서 수습하여 절 남쪽 산봉우리에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문집 15권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 않는다. 5년 후 제자 교청(敎淸)이 비를 건봉사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