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어릴 때부터 지조가 굳고 무예에 뛰어났다. 1460년(세조 6) 신숙주(申叔舟)의 모련위(毛憐衛) 정벌에 공이 있어 훈도(訓導)로서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훈되었다.
이듬해 3월에는 온성절제사로서 잠입하여 온 야인을 추격, 사살하는 등 북방에서 무위를 떨쳤으나, 1466년 8월 영흥부사로 있으면서 조정 명령을 거역하였다고 하여 추국당하였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구성군(龜城君) 준(浚)의 비장(裨將)으로 출전하여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훈되고, 자선대부(資善大夫)로서 호분위대호군(虎賁衛大護軍)에 임명되고, 풍성군(豊城君)으로 봉하여졌다가 초계군(草溪君)으로 개봉되었다.
그 해 10월 건주위(建州衛) 정벌 후 포로된 야인을 요동(遼東)으로 압거(押去)하는 호송군의 책임장수로 호송도중 가산군(嘉山郡)에 이르러 병으로 죽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