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여식(汝式). 정유청(鄭幼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원(鄭源)이고, 아버지는 군수 정도행(鄭道行)이며, 어머니는 최정길(崔廷吉)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진사가 되고, 그 해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9년 지평, 1711년 세자시강원사서를 거쳐 이듬해 다시 지평이 되었다.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박필몽(朴弼夢)·이명의(李明誼)·이진유(李眞儒)·윤성시(尹聖時)·서종하(徐宗廈) 등과 같이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김창집(金昌集) 이하 노론 4대신을 4흉(凶)으로 몰아 논죄하는 소를 올려 이들을 위리안치(圍籬安置)하고 뒤에 다시 사사(賜死)하게 하였다.
1722년 장령을 거쳐 사간이 되어 노론을 비호하는 어유구(魚有龜)를 논죄하는 소를 올렸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관직을 삭탈당하고 영천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 북변으로 배소를 옮기다 죽었다. 순종 때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