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협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에안현감, 종성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613년(광해군 5)
주요 관직
종성판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에안현감, 종성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예안현감에 취임하였으며, 그 뒤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 1613년 광해군을 후원하던 대북파의 영수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하여 영창대군을 추대하려고 한다는 무고를 받고 사사(賜死)되었다.

그러자 그도 이러한 역모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1613년 종성판관으로 재직 중 체포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물론 그와 관계있는 사람까지 수난을 받아 그를 추천한 이항복(李恒福)·노수신(盧守愼) 등이 잘못 천거하였다는 죄명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 역시 압슬(壓膝) 등의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김제남을 일찍이 사복시(司僕寺)에서 만났는데 그에게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제의하였으며, 그 실천방법은 광해군이 왕릉에 행차할 때를 기다려 방리군(坊里軍)을 동원하여 습격한 뒤 훈련도감 군대를 이끌고 그 심복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라고 허위자백하였다. 이것으로 인하여 끝내 처형당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