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압해(押海 : 지금의 나주). 자는 이안(而安). 고종 때 벼슬이 비서감(祕書監)이었고 시문과 묵죽으로 이름이 높았다.
지금 남아 있는 그림은 한 점도 없으나 그와 동시대 사람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이규보 자신, 또는 당시의 문신 최종준(崔宗峻) 등이 그에게 그림을 그려받고 지은 찬(贊)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 그의 묵죽화를 북송의 사대부 묵죽화의 대가인 문동(文同)의 그림에 버금간다고 평하였으니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종이에 묵죽을 그리기 싫어하여 가난한 선비 이규보도 비단을 구해다 주어야 묵죽을 그려받을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선비화가로서는 드물게 초상화에도 뛰어나 이규보는 자기의 초상화를 부탁하여 그려받고 이에 감사한 글도 남겼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도 그의 문장과 묵죽을 찬미한 글이 실려 있다. 기록들만으로는 그의 묵죽화 양식을 알 수 없지만 그의 존재는 고려시대 문인들 사이에 묵죽화가 널리 행하여졌음을 알려준다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