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남한강 본류와 그 지류인 창내(제천천)가 만나는 곳에 이루어져 있다. 주위에는 월악산 줄기인 관봉ㆍ죽방재ㆍ고봉 등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창내 유적은 충주댐수몰지역의 문화재(현, 국가유산)를 지표조사하면서 1980년 2월에 처음 발견하였다. 조사 당시 타제의 석영석기와 유문암석기가 출토되었다.
그 뒤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단이 결단되면서 창내 유적을 사기리 C지구라는 발굴지역 이름으로 1982년 여름과 1983년 여름에 2차에 걸쳐서 발굴하였다.
창내 유적에서 출토된 것은 대부분 타제석기로서 강변에 이루어진 자연 자갈층의 돌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출토된 석기 중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찍개와 찌르개같은 사냥과 도살 목적의 연모와 밀개ㆍ긁개ㆍ자르개 같은 식생활을 위한 연모이다. 또한 나무를 자르는데 사용한 톱니날과 석기를 만드는데 쓰여진 모룻돌과 돌망치도 다수 출토되었다.
석기 제작수법은 중기구석기시대의 무스테리앙과 르발루와문화의 성격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밀개와 긁개는 석기의 제작수법과 형태로 보아서 오리냐시앙(Aurignacian : 프랑스의 후기 구석기문화의 일종) 수법이 뚜렷해 창내 유적이 후기 구석기문화유적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오리냐시앙수법과 형태로 만들어진 둥근 밀개가 다수 출토되어 창내 유적의 구석기문화층을 ‘둥근밀개ㆍ긁개문화층’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외에 중요한 석기로는 흑요석으로 만든 긁개와 격지를 들 수 있다.
창내 유적에서 발굴된 내용 중 중요한 것은 집자리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강자갈을 이용해 기둥을 세웠던 기둥 구멍자리, 원래 그대로의 타원형 불땐 자리, 석기 제작장소가 그것이다. 이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강가에 집을 짓고 생활했던 당시 생활상의 일면을 복원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집은 구조상 강의 방향으로 문을 만들었으며, 비대칭형의 원뿔모양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땐 자리는 강의 방향으로 집 밖에 있었다. 집을 복원한 결과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따라서 많지 않은 사람이 생활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창내 유적은 강변에 있는 들판 유적으로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강변에 집을 짓고 석기를 만들고 사냥이나 물고기잡이를 주로 하면서 생활했던 곳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성격은 토양성분 분석결과 구석기문화층인 둥근밀개ㆍ긁개문화층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에 함유된 유기질 함유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러나 주된 생활근거지는 다른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몇몇 사람이 집을 짓고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이라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또는 일정한 계절에 와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집자리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