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휘(景輝), 호는 성재(省齋). 아버지는 조경섭(曺景燮)이며,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로 이주신(李柱臣)의 딸이다. 할아버지 조학경(曺學敬)에게 수학하였다.
1867년(고종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자인현감·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삼정책(三政策)」을 올려 왕의 마음은 모든 교화의 근원이 됨을 역설하였고, 「오조소(五條疏)」를 올려 당시의 급선무를 다섯 가지로 분류, 시행을 촉구하였다.
또한, 경연(經筵)에서 논리정연하게 시강하여 고종의 칭찬을 받았다. 1871년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몰두하고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