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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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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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사관학교 설립 준비를 위하여 1884년(고종 21)에 설치된 임시 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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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 사관학교 설립 준비를 위하여 1884년(고종 21)에 설치된 임시 사관학교.
내용

1884년 7월 말 서재필(徐載弼) 등 14명의 사관생도들이 일본의 육군호산학교(陸軍戶山學校) 교육을 받고 귀국하자 당시 개화파인사들은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이들을 수용하고 신식 군사훈련을 시킬 사관생도 양성을 국왕에게 건의하였다.

특히 사관생도들이 창덕궁으로 불려가 교련과 체조 등을 시범하여 국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을 계기로 개화파인사들은 사관학교 설립을 적극 간청하였다.

이에 국왕이 호의를 표시함으로써 같은 해 8월 20일 사관학교 설립준비를 위하여 조련국이 설치되고, 사관장(士官長)에 서재필이 임명되었다. 이어 금위영의 화약고를 이속시키고 같은 해 10월에는 조련국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임오군란 이후 1,500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군대의 훈련까지 일부 담당하고 있던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압력과 민씨척족의 방해로 개화파인사들이 바라던 사관학교 설립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더욱이, 많은 사관생도들이 갑신정변 당시 행동대로 가담하였다가 체포됨으로써 조련국은 1884년 말 그 기능이 상실되어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
『윤치호일기』
『갑신일록(甲申日錄)』
『음청사(陰晴史)』
『서재필박사자서전』(김도태, 수선사, 1948)
「개화당의 형성」(이광린, 『성곡논총』3, 1972)
「미국군사교관의 초빙과 연무공원」(이광린, 『진단학보』28, 1965)
집필자
박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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