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성익(聖益). 증조는 조형진(趙亨鎭)이고, 조부는 조운시(趙雲始)이며, 아버지는 조준영(趙駿永)이다.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 홍성모(洪性謨)의 딸이다.
1883년(고종 10)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1890년 고부사(告訃使) 홍종영(洪鍾永)을 수행하여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국을 다녀왔고, 1893년 식년감시(式年監試)의 시관(試官)을 지냈다.
1898년 김홍륙(金鴻陸) 독차사건(毒茶事件)으로 인사불성이 된 태자궁(太子宮)을 잘 보살핀 공로로 태의원(太醫院) 관원들이 품계가 상승될 당시 태의원 소경(少卿)으로서 품계가 올랐다. 같은 해에 비서원승(秘書院丞)으로서 궁내부 특진관으로 칙임관 4등에 서임되었다. 이후 1901년까지 비서원승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