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27세의 김익상은 1921년 9월 중국 북경(北京)에서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조선총독부 폭파와 총독 등 일제 요인 처형을 위하여 폭탄 2개와 권총 2자루를 건네받고 같은 달 11일 서울로 잠입하였다.
이튿날인 13일 아침 변장하고 왜성대(倭城臺 : 지금의 서울시 예장동)에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로 들어가 2층 비서과와 회계과에 각각 폭탄 하나씩을 던졌다. 처음에 던진 것은 불발되고, 두 번째 던진 것은 커다란 폭음과 함께 폭발하여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였다.
김익상은 혼란에 빠진 조선총독부를 빠져나와 평양을 거쳐 만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일제 식민지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에 대한 폭탄투척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