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덕공(德恭), 호는 도곡(道谷). 김포 출신. 아버지는 의병장 조헌(趙憲)이다.
용모가 기위(奇偉)하고 성품이 초륜하여 효성이 지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였다. 아버지의 지극한 만류에도 듣지 않고 항상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청주에서 승병장 영규(靈圭)의 군사와 합세하여 적을 크게 무찔렀다.
많은 공을 세웠으나 이 해 금산(錦山)의 적을 공격하다가 적의 역습을 받아 전세가 불리해지자 관복으로 갈아입고 아버지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가 순사하였다. 적에게 주장(主將)으로 오인되어 그 시체도 거두지 못하였다.
1615년(광해군 7)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고, 현종 때에 지평에 추증되고,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와 옥천의 표충사(表忠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