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강서군 출생. 아버지는 조용열(曺用悅). 평양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 트로이주립대학 토목과, 퍼두커대학 물리학과, 그리고 인디애나대학 대학원에서 수업한 뒤 그 대학원에서 「3극진공관의 출력조건」이라는 논문으로 1928년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기독교 청년운동에 참여하면서 『농민생활』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여 농민교육에 힘썼다. 광복 후에는 군정청 경무부 통신국장, 정부 수립 후에는 육군통신학교장과 통신감을 거친 뒤 1956년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57년 체신부차관에 취임한 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통신시설 복구에 공을 세웠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국전자고등공업학교 기술고문, 동국전자공과대학 명예학장, 광운전자공과대학 학장, 전자공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전기통신공학에 관한 서적 외에도 일반교양 과학서적인 『백만인의 원자학』·『백만인의 인공위성』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