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여직(汝直), 호는 송호(松湖). 평양서윤 조준(趙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제용감부정 조응세(趙應世)이고, 아버지는 사포서별제 조진(趙進)이며, 어머니는 좌통례 김진(金鎭)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진사가 되고, 159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거쳐 박사에 이르렀으며, 그 뒤 전적·정언·예조좌랑·수찬·지평·보덕·사간·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응교·집의·사성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1598년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광해군 초 사간에 임명되어 사직하면서는 8조의 소(疏)를 올려 시무(時務)를 논하기도 하였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자,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이 김직재의 일당인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아 부득이 직제학에 취임하였으나 곧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정경세(鄭經世)·한백겸(韓百謙) 등과 친교를 맺고 학문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