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원빈(元賓). 조경호(趙慶鎬)의 아들이다.
1880년(고종 17) 증광별시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고종은 약(藥)을 하사하고 승지를 보내어 그 어머니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규장각대교 · 동부승지 첨서(同副承旨添書) · 의정부도헌(議政府都憲)을 거쳐 1895년 충주부관찰사가 되었다. 내직으로 돌아와 같은 해 내무아문협판(內務衙門協辦)을 지낸 뒤 다시 1897년 광주부윤(廣州府尹), 1898년 개성부윤, 경상북도관찰사가 되었다.
1899년 궁내부특진관 · 궁내부협판을 거쳤다. 그런데 이 해에 내부대신 이건하(李乾夏)가 조한국이 경상북도관찰사로 있을 때 당시 판적(版籍)의 민정(民丁) 숫자보고가 5개월 이내에 되어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는 문제를 상주하여 1개월 벌봉(罰捧) 처분을 받았다.
1900년 전라북도관찰사,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전라북도관찰사 재임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전주민(全州民)들이 조한국의 유임을 조정에 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납(稅納)을 정지시킨 죄로 견책당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민(民)을 구휼하기 위하여서였다는 정상이 참작되었다.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 · 의정부참찬 · 궁내부특진관, 1905년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 ·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 1906년 제실회계심사국장(帝室會計審査局長), 1907년 지돈녕사사(知敦寧司事) ·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